파블로 피카소는 한 가지 화풍에 안주하지 않고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하며 미술사의 패러다임을 뒤흔들었습니다.
그는 나는 구하지 않는다, 발견할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으며, 전통적인 원근법을 완전히 해체한 아비뇽의 처녀들로 미술계에 거대한 충격을 던졌습니다.
또한 그는 입체주의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을 뿐만 아니라, 수만 점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을 남기며 지치지 않는 창작욕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생활에서도 그는 주변 사람들을 완전히 압도하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독점욕을 지녔던 인물로 유명했습니다.
이러한 파블로 피카소의 거침없는 행보와 예술적 성취는 그의 사주에 나타난 기운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사주로 보면, 태어난 날의 기운인 임수(임수는 만물을 품는 깊은 바다와 거침없이 흐르는 강물을 의미합니다)가 사방의 수 기운과 결합하여 멈추지 않는 흐름을 만들어냈기 때문인데, 이렇게 물의 기운이 역동적인 사람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려는 성향을 보입니다.
이는 파블로 피카소가 청색시대, 장미시대, 입체주의를 거쳐 말년의 도자기 작업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자신을 부정하고 새로워졌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그는 미술계의 권위와 사회적 편견에 맞서 자신만의 예술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사주로 보면, 태어난 달의 기둥인 무술이 편관(편관은 강력한 카리스마, 명예욕, 그리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통제력을 의미합니다)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편관의 기운이 이처럼 굳건하게 자리 잡은 사람은 타협하기 어려운 고집과 함께,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세상을 지배하려는 혁명가적 기질을 품게 됩니다.
이는 파블로 피카소가 기성 미술계의 비난에 굴하지 않고, 오히려 대중을 자신의 예술 세계로 끌어들이며 군주처럼림했던 삶의 태도와 일치합니다.
파블로 피카소의 사주 네 기둥은 신사 무술 임진 임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거대한 산맥 사이를 흐르는 도도한 강물처럼, 강인한 토 기운과 주체할 수 없이 넘쳐나는 수 기운이 팽팽하게 대립하고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형상을 취하고 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의 삶은 굶주림과 고독으로 점철되다 요절한 많은 천재 예술가들과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렸습니다. 그는 살아생전 이미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역사상 가장 부유한 예술가로 이름을 남겼습니다.
예술적 천재성이 상업적 성공과 완벽하게 결합할 수 있었던 비결은 그의 사주 연주에 자리한 신사 기둥 덕분이었습니다.
사주의 연지에 있는 사화는 편재(편재는 넓은 무대와 역동적인 재물 활동, 공간을 장악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에 해당합니다.
이는 그가 단순히 캔버스 안의 예술가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작품 가치를 세상에 세일즈하고 시장을 개척하는 탁월한 사업가적 감각을 타고났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 사화 속에는 천을귀인(천을귀인은 인생의 중대한 위기에서 벗어나게 돕고 귀인의 조력을 받게 하는 길한 기운을 의미합니다)이 함께 머물고 있었습니다.
천을귀인의 존재는 그가 수많은 전쟁과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목숨을 보존하고,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자신의 명성을 더욱 공고히 다질 수 있도록 돕는 보호막 역할을 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는 스페인 내전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모두 겪으면서도 예술적 자유를 누리며 안전하게 살아남았습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침묵을 강요당할 때,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묵묵히 작품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는데, 이는 그의 사주에 깃든 귀인의 기운과 강력한 관성의 통제력이 그를 보이지 않게 지켜주었음을 보여주는 실증적 사례입니다.
그의 삶에 새겨진 또 다른 독특한 결은 끊임없는 여성 편력과 그로 인한 예술적 영감이었습니다.
사주에서 수 기운이 강하고 일지에 진토 편관을 두고 있는 구조는, 이성과의 관계가 단순한 연애에 그치지 않고 인생의 변곡점을 만드는 강력한 촉매제로 작용함을 뜻합니다.
그에게 여인은 예술적 자극을 주는 뮤즈인 동시에, 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투영하는 거울이었습니다.
16~25세 병신 대운
파블로 피카소가 고향 스페인을 떠나 예술의 중심지인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여 본격적인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그는 지독한 가난을 경험했고, 절친한 친구였던 카를로스 카사헤마스의 자살을 목격하며 깊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슬픔은 온통 푸른빛으로 화면을 채운 청색시대(1901~1904)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