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링컨은 분열의 위기에 처한 미국을 하나로 묶어 세우고,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역사에 아로새긴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남긴 수많은 업적 중에서도 1863년 게티즈버그에서 행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연설은 오늘날까지도 민주주의의 정수를 담은 최고의 명연설로 기억됩니다.
이처럼 대중의 마음을 깊이 울리는 탁월한 언어적 설득력은 사주로 보면 태어난 시간의 기둥인 경신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일간 무토의 강인한 에너지를 바탕으로 시주의 경신이 식신(식신은 자신의 내면을 세상에 지혜롭게 표현하는 언어적 재능과 창의성을 의미합니다)의 기운을 강력하게 뿜어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 속에서 간결하면서도 힘 있는 언어로 대중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독보적인 설득가였음을 잘 보여줍니다.
또한 그는 참혹한 남북전쟁이라는 내전의 포화 속에서도 연방을 수호하고 노예제를 폐지하겠다는 신념을 끝까지 꺾지 않았습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비난과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 고집스러운 뚝심은 태어난 날의 기운인 무토(넓고 단단한 대지나 산을 의미합니다)가 일지의 오화 양인(양인은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극단적인 인내심과 결단력을 의미합니다) 위에 굳건히 자리 잡은 무오 일주의 특성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에이브러햄 링컨이 거센 비바람 앞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거대한 바위처럼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았음을 증명합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사주는 연주의 기사, 월주의 병인, 일주의 무오, 시주의 경신이라는 네 개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사주 전반에 뜨거운 불과 단단한 흙의 기운이 가득하여 스스로를 지탱하는 힘이 매우 강건하였고, 이 웅축된 에너지가 시주의 맑은 금 기운으로 흘러가는 수려한 흐름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메리 토드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변호사로서 안정적인 명성을 쌓아갔습니다.
마침내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며 중앙 정치 무대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으나, 당시 미국이 일으킨 멕시코 전쟁을 강하게 비판했다가 애국주의 열풍에 밀려 대중의 외면을 받았습니다.
결국 단 한 번의 임기만을 마치고 정계에서 은퇴하여 고향으로 돌아와 깊은 좌절감 속에 야인 생활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시기는 임술 대운으로, 임수 편재가 들어왔으나 지지의 술토 비겁(비겁은 타협하지 않는 자기주장과 고집, 그리고 주변과의 갈등을 의미합니다)이 들어와 사주의 불기운을 더욱 강하게 부추겼습니다.
자신의 강한 신념을 굽히지 않고 전쟁의 부당함을 외치다가 주변 정치인 및 대중과 타협 없는 대립을 자초하였고, 이로 인해 정치적 고립과 은퇴라는 혹독한 겨울을 스스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42~51세 신유 대운
지방의 평범한 변호사로 묻혀 지내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1854년 노예제 확대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자 분연히 정계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그는 신생 공화당에 입당하여 노예제 반대의 선봉에 섰고, 당대 최고의 정객이었던 스티븐 더글러스와 역사적인 대론을 펼치며 전국적인 인물로 떠올랐습니다.
비록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낙선했으나, 그의 논리정연하고 정의로운 연설은 미국 전역의 대중을 열광시키며 대통령 후보의 반열에 오르게 만들었습니다.
이 시기는 신유 대운으로, 그의 사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운인 강력한 금 식상(식상은 자신의 신념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는 설득력과 대중적 영향력을 의미합니다)이 간여지동으로 들어온 인생 최고의 황금기였습니다. 웅축되어 있던 무토 일간의 에너지가 신유 금의 날카롭고 맑은 기운을 통해 막힘없이 표출되면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언어는 노예제의 모순을 찌르는 날카로운 칼날이자 대중의 마음을 치유하는 따뜻한 횃불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