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거목을 꼽으라면 단연 김영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평생을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투사였으며, 마침내 국가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 군부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고 금융 혁명을 이룩한 개혁가였습니다.
군사 정권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 의원직 제명이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도 그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불멸의 명언을 남기며 민주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꺾지 않았습니다.
이 타협하지 않는 뚝심과 거침없는 투쟁력은 그의 타고난 기질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김영삼의 성격적 기반이 되는 것은 사주에서 태어난 날의 기운인 무토 일간입니다. 무토는 넓고 단단한 흙이자 굳건히 서 있는 거대한 태산을 의미합니다.
사주에서 무토를 일간으로 쓰는 사람들은 웬만한 외풍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인한 맷집과 뚝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가 서슬 퍼런 유신 정권과 신군부의 탄압 앞에서도 단식 투쟁을 감행하며 벼랑 끝 대치마저 불사했던 것은, 이 굳건한 태산처럼 흔들리지 않는 자아와 강력한 주체성이 내면에 굳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1993년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를 전격 해체하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시점에 금융실명제를 전격 단행하여 온 나라를 뒤흔들었습니다.
이러한 전격적이고도 과감한 개혁 조치는 사주에서 월주인 임자 기둥과 일주인 무자 기둥에 가득한 수 기운, 즉 재성에서 비롯된 힘이었습니다.
사주에서 재성은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력과 시장의 흐름을 읽는 안목, 그리고 과감한 기획력을 의미합니다. 특히 일지 자수와 월지 자수가 뿜어내는 강한 수 기운은 그가 명분론에만 갇혀 있는 선비형 정치인이 아니라, 권력의 생리를 정확히 꿰뚫고 판세를 단숨에 뒤엎을 줄 아는 고도의 승부사적 기질을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김영삼의 사주는 정묘년, 임자월, 무자일, 병진시에 태어난 사주팔자 네 기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사주는 차가운 겨울날, 끝없이 펼쳐진 대지가 하늘의 태양을 바라보며 거세게 흘러가는 강물을 다스리는 형상입니다.
한겨울의 차가운 물줄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시주에 자리한 따뜻한 병화와 진토의 기운 덕분에 얼어붙지 않고 자신만의 단단한 대지를 유지할 수 있었던 구조를 보여줍니다.
김영삼은 복잡한 이론이나 정교한 논리 싸움보다는 직관적으로 대세를 파악하고 현장에서 직접 부딪치며 돌파구를 찾는 정치를 선호했습니다.
머리로 계산하기 전에 가슴으로 먼저 느끼고 행동으로 옮기는 특유의 저돌성은 주변 사람들을 단숨에 매료시키거나 혹은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기질은 사주에서 정재(정재는 안정적이고 정당한 재물, 합리적인 규칙과 질서를 의미합니다)와 편재(편재는 큰 재물, 대담한 기획력, 유연한 재물 활동을 의미합니다)가 사주 전체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형국에서 나옵니다.
월주의 임자 기둥은 천간과 지지가 모두 물로 이루어진 강력한 수 기운이며, 일지의 자수 역시 차갑고 깊은 물입니다. 이처럼 사주에 재성의 기운이 왕성하게 흐르면 대단히 현실 감각이 발달하고 직관력이 뛰어납니다.
그는 백성들의 마음이 어디로 흐르는지, 지금 당장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를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천부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한 재성 중심의 사주는 필연적으로 약점을 동반하게 마련입니다. 그의 사주 원국에는 식신(식신은 재능, 표현력, 창의성을 의미합니다)과 상관(상관은 예리한 비판력과 세심한 소통 능력을 의미합니다)의 기운이 지장간 깊은 곳에 숨어 있을 뿐,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정교하고 치밀한 정책 설계나 반대파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세밀한 소통 과정에는 다소 서툰 모습을 보였습니다.
세세한 각론을 조율하기보다는 거시적인 담론을 던지고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그의 개혁은 늘 과감하고 빨랐지만 동시에 정교한 마무리가 아쉽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는 사주에 식상의 섬세함이 부족하고 재성의 직관적 결단력이 지나치게 앞섰던 기질적 특성과 정확히 맞물려 있습니다.